YOG 25⁺ 지원자 (2022 매치)

기회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년도 훨씬 더 지난 2021년 9월, 미국에서 레지던트를 해보겠다며 2022년 매치를 위해 500곳 이상의 프로그램에 지원서를 제출하였다. 원서 지원에 반드시 필요한 스텝1과 스텝2 CK만을 통과한 상태였기에, 원서 지원후에도 스텝 2CS 대신 요구되는 OET를 통과하느라 남들보다 늦은 10월 말에서야 인터뷰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사이 하루가 멀다 하게 오는 리젝트 메일에 좌절하며, “인터뷰라는 것이 과연 내게도 올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던 12월 어느 날, 선물처럼, 한 곳에서 인터뷰 날짜를 잡으라는 연락이 왔다. 내게는 없을것 같던 인터뷰가 이때 부터는 현실이 되었다. 발등의 불이 떨어진 것이다. 지원을 해도 YOG라는 필터로 인해,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내 서류를 보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새로이 레지던트를 시작하고자 하는 나의 의도나, 굳은 의지, 티칭 호스피털에서 풀타임으로 근무하며 쌓아온 나의 진료, 교육, 연구 역량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인터뷰를 받는다면, 선발로 연결될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인터뷰가 선발로 이어지도록 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순간이 된 것이다. 

칸 선생님과의 인터뷰 준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여, 칸 선생님과 연결이 되었고, 나의 긴 YOG가 레드플랙에서 블루플랙이 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미국 서부에 계신 칸 선생님과는 주당 3~4회의 새벽 줌미팅 수업을 하였다. 칸 선생님과의 첫 작업은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인터뷰 준비 기간 내내, 예상되는 질문에 대해 내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도미에 대해서는 설득력있는 답변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막연하던 나의 의도는 상대방을 납득시킬수 있는 답으로 변해야만했다. Stable하고 productive한 포지션에 있는 50대가 무슨 이유로 미국에서 레지던트를 하면서까지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 부분에서 상대방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그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까지 단정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 답변을 준비하면서, 다시 의과대학을 지원하던 시절로 돌아가, 나는 왜 의사가 되고자 했는지 되돌아 보았고, 20여년의 진료기간이 내게 준 영향들을 생각하였다. 답변을 준비할 때 가장 신경을 쓴 부분 중 하나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었다. “나를 뽑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방이 궁금해하거나,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칸 선생님은 나보다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에 대한 답변을 같이 고민해주셨다. 수업의 절반은 서로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답변의 내용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나갔고, 나머지 절반은 모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나의 경험들은 칸 선생님을 통해 답변에 아름답게 녹아들어갔고, 내겐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던 경험들이 칸 선생님의 눈에 크게 비추어지며, 나의 답변은 더욱 설득력 있게 변해가고 있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는 2달여동안, 새벽시간의 줌미팅은 전날의 암기숙제를 검사받아야 하는 긴장도 있지만, 나의 기억이 스토리로 연결되는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설레임도 있었다. 내 기억주머니 안쪽 깊숙히 쳐박혀있어, 잊고 있던 것들을 꺼낼수 있게 해주시고, 거기에 쌓인 먼지를 닦고 반짝반짝 빛나게 해서, 내 새로운 출발에 도움을 주는 답변으로 연결짓는 과정은 가히 예술이었다. 이것은 참으로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그렇게 하면서 첫 인터뷰를 무사히 마쳤다. 단답형의 묻고 답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몇번의 라운드가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마치 동료와 얘기하듯 편안한 분위기의 첫 인터뷰를 마친 것이다. 이후 3개의 인터뷰를 더 받아 총 4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첫 인터뷰는 1월 초, 마지막 인터뷰는 2월 초순으로 각 인터뷰마다 약 10일 정도의 간격이 있었다.

매치와 인턴 생활을 되돌아보며

칸 선생님과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도 지원결과가 좋지 않다면, 2023년에 한번 더 지원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재도전한다면, 어떤 점을 보완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고민을 하였다. CV의 내용은 크게 바꿀 것이 없다, 아니 바꿀 수도 없다. 이것은 있는 사실을 그래도 적어야하는 것이기에. 다만, 인터뷰에 자연스럽게 녹아날 수 있는 취미를 적을 수는 있을 것이다. 2022년 지원을 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PS와 인터뷰 사이의 연결성이 좀 부족한 것이었다. 내게 관심이 있는 프로그램에서는 나의 정보를 PS와 CV를 통해 얻을 것인데, 2022년 PS 내용은 나의 지원동기를 충분히 어필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긴 YOG 상황에 비추어, 상대방을 설득시킬 만한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CV에 충실한 PS를 작성한 것이었다. CV가 우뇌를 자극한다면, PS는 좌뇌를 자극해야한다고 하는데, 그러질 못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에서 나의 지원동기를 잘 어필해야만 했다. 따라서, PS도 인터뷰의 일부로 여기고, 이 작업부터 칸 선생님과 함께 했다면, 좀 더 완성도가 높은 지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전체적으로 좀 더 짜임새 있게, 그리고 좀 덜 불안하게, 준비 기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미국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방면으로 정말 다양한 나라인 것에는 틀림이 없다. 한국의 획일화된 서열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정말 다양한 자리가 있는 것 같다. 지원자의 나이가 많다거나, YOG가 길다거나, 미국의 의료 경험이 없다거나, 스텝 점수가 좋지 않다는 단점에 의기소침해 하기보다는, 나의 장점에 촛점을 맞추면 오히려 좋은 스토리가 나올 수 있다. 또한 한 시점에서의 높은 위치보다는 그 사람의 발전 (improvement)에 더 큰 점수를 주는 것 같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을 염두에 두며, 자기 자신을 깊히 뒤돌아보면, 지원자의 뒤늦은 출발도 원하는 결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될 것을 믿으며, 그보다 더 중요한, “나는 왜 미국에서 의사를 하고 싶은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본인에게 던져보기 바란다. 내부적인 동기가 아닌, 외부의 영향으로 지원을 하는 것이라면, 설사 좋은 결과로 연결되더라도, 이후의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기에...... 인턴 10개월차 막바지에 있는 지금, 아직도 많이 힘들지만, 젊지 않은 나를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게 해준 프로그램에 감사하고, 뒤에서 든든히 밀어주시는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홀가분히 떠날수 있게 응원해주신 환자분들께 감사하고, 아직도 영어를 지도해주시는 칸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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